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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타유발자들' 을 위한 변명

시간이 꽤 지났지만, 설 연휴에 모 방송사에서 편성한 영화 중 '구타유발자들'이 있었습니다.

자정을 거의 넘긴 시간에야 볼 수 있도록 편성되었는데, 이 정도면 '영화보지 말고 자라'는 편성의 의도가 느껴질 법하지만.. 잠도 안 오고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한번 또 맨정신으로 보겠냐는 생각에 채널을 고정했습니다.

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는 다양한 악평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역겹다, 혐오스럽다, 재미없다, 웃길려고 한 거 같은데 안 웃기다 등등...
제목에서 밝혔지만 이 글은 이런 악평가득한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찾아내려 애쓴 글입니다.
(뭐 이런건 저보다 더 유명한 평론가님들이 잘해 주시겠지만;;;)

이런 악평들을 피해갈 만한 이유를 들고 늦게나마 이 영화의 손을 한번이라도 들어주기 위해서 쓴 글이므로, '절대로 이 영화는 재미 없었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제 글을 일부러 보실 필요가 없습니다.

자. 먹어. 많이먹어.

 
1. 우리가 불쾌하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

자신의 의사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엔 무엇이 있을까요? 흔히 말이나 글, 그림, 소리 같은 걸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엔 몸짓 등.. 생각해 보니 여러 가지가 있네요.

그렇다면 몸짓 중에서 가장 전달 효과가 확실한 것은 무엇일까요? 영화에서 본 대로라면 그 답은 바로 '구타'입니다. 사람은 상대를 때리면서 자신의 목적성을 가진 적대감에 비추어 자신의 생각을 '맞는 사람에게' 전달하기도 합니다.

구타는 흔히 폭력의 범주에 속한다고 보는데, 제가 말, 글, 소리, 몸짓 등으로 구별해 놓고 몸짓의 범위 내에서 구타에 대한 설명만으로 글을 시작하긴 했지만, 사실 폭력에는 구타만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이나 그림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는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폭력을 평소에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일단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을 법한 폭력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먼저 대한민국 거의 모든 남자들이 갔다 오는 '군대'에서의 폭력이 있겠습니다.
싫든 좋든가서, 싫든 좋든(?) 최소한 한두 가지의 폭력과 구타로 맺어진 관계를 가지고 사회로 나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별 이유 없이 선생님께 심하게 맞아 본 기억을 가진 분은 좀더 이른 시기에 이런 상처를 갖게 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선생님과는 일정 부분 폭력으로 맺어진 관계가 된 셈이니까요.

그밖에 우리는 직장에서는 상사와, 대학교에선 교수, 신입생 때는 선배들과 교류하면서, 실무적응, 통과의례, 기합이라는 그럴듯한 이름하에 집단 따돌림, 성폭력, 등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겪으며 살아갑니다.

폭력을 겪고, '까라'면 까고, '구르라'면 구르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서, 우리는 이것을 '윗사람의 눈 밖에 나지 않으면서, 자신의 위치를 굳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겪은 폭력이 당연함을 생각이 아닌 몸으로 깨닫게 되고, 이것을 자신의 아랫사람에게 똑같이 행하는 '폭력의 역사'의 일부분이 되어갑니다.

그러곤 언젠가 직장 동료나 친구들을 모아놓고 삼겹살에 소주를 까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실수없이 잘 할 수 있다, 부하들도 내 말 잘 듣는다'
'생각해 보면 그때 그래서 여기 잘 적응할 수 있었다'

2. '구타유발자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폭력은 코미디 영화처럼 미화된 조폭들이 나와서 웃기기 위해 보여주는 폭력이 아닙니다.

저는 군대를 가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친구나 주변인들의 군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알게 되는 것들 중에는 구타이야기가 꼭 나옵니다.
상급자라며 구타하고, 다음날 언제 그랬냐는 듯 맞은 사람에게 먹을거나 담배를 쥐어주면서 '내 말 잘 알아들었지? 잘해보자구'하며 말하는 사람들..

머리 속에선 끊임없이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폭력은 나쁜 것인데' 하고 생각하고 되뇌이지만, 폭력이 나쁘다는 걸 표현하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얻어맞고 있는 우리의 몸은 '구타유발자들'의 의사를 반영하게 됩니다.

구타유발자들은 폭력으로 인한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 길을 끊임없이 찾아 헤메다가, 결국 자신의 밑에 있는 사람에게 '당연한 채찍'이라며 폭력을 행사하고, '당연한 당근'이라면서 삼겹살에 소주를 권합니다.
그리고 맞고 있는 피해자도 이 '당연한 것으로 미화된, 나쁘다고 생각해 온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는데 능숙해져 갑니다.

'구타유발자들'은 앞에서 적어 놓은, 우리가 '좀 맞아야 된다'면서 쉽게 말하며 방관하고 받아들여온 폭력, 특히 구타를 참여자가 아닌 ' 지켜보는 자'입장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며 혐오감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평소에 폭력에 대해 생각해오던 것과 몸으로 느끼고 있던 것이 상당히 다름을 부정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성폭력으로 시작해서 언어폭력, 계속된 구타를 등장시키더니 결국 서로 싸울 것을 강요하다가 이유 있는 폭력의 답습을 보여주곤 그 피해자들만을 남긴 채 끝나버립니다.

질리도록 두들겨 패 놓고는 담배 하나 주고, 덜 익은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건네고 소주를 따라주면서, 우리의 마음의 한구석 어두운 곳에 자리잡은 구타유발자들은 해맑게 웃으며 말합니다. '자 먹어, 많이 먹어'

그렇게 토할 정도로 먹은 후 자고 일어나면, 다음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행동하는 주변의 분위기에 맞춰, 삼겹살과 소주가 똥으로 나오기도 전에, 구타로 인한 상처를 마음 속에 품은 채 '아무 일도 없었던 척' 하며 우리는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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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피해자는 가해자가 된다

영화에는 피해자이자 가해자로서 '폭력의 역사'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첫 장면부터 교수(이병준)가 여자(차예련)를 겁탈하려는 장면이 나옵니다.
'벤츠를 타는 명문 음대 교수'의 지위를 이용해, 여자의 출세를 보장한다는 그럴듯한 말과 함께 겁탈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등장하는 이문식과 그 패거리들로부터 마치 실제로 몸을 더듬는 듯한 음흉한 시선 공격(?)을 꾸준히 받으면서 그녀는 폭력 앞에 굴하는 피해자이자 '자신의 나약함으로 모든 것을 용서받으려는 방관자'가 되어갑니다. 현재(김시후)가 심하게 두들겨맞고 성추행까지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녀는 그냥 떨며 눈을 돌릴 뿐 적극적으로 이를 막으려 들지 않습니다. 나중에 봉연(이문식)과 교수의 벤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결국 자신을 겁탈하려 했던 교수의 벤츠를 선택함으로서 폭력으로부터 그저 피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곧이어 봉연패거리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오근(오달수)은 쥐를 잡아서 쥐에게 억지로 쥐약을 먹여 쥐를 죽여버리는 기이한 행동을 합니다. 살아 있는 생물에게 의미 없는 폭력을 습관적으로 행하는 전형적인 '병든 자'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영화가 중반을 지나면 봉연이 현재를 괴롭히는 이유가 등장합니다.
문재(한석규)가 어릴적 자신을 '귀여워해준다'는 명분 하에 따돌리고 성적으로 괴롭힌 것 때문에, 그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현재를 납치해 괴롭혔던 것입니다.

봉연은 영화 내내 정경호, 신현탁, 오달수에게 때로는 서로 싸우게 하고, 때로는 겁탈하게 하고, 때로는 구타를 하는 등, 자신만의 '폭력의 시스템'을 떡주무르듯 운영하면서 만족해합니다.

그리고 피해자인 인정은 방관을, 현재는 똑같은 폭력으로 맞서다 숨겨온 형의 권총(문재는 경찰입니다.)을 발사하는 등.. 순환하는 폭력의 시스템을 노골적으로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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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무일도 없었던듯 끝나는 영화

결국 후반부에 문재가 나타나면서 이 '미친 발작과도 같은 상황'은 빠르게 정리됩니다.
문재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여기서 본 것도 들은 것도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모두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 겁니다. 교수님은 인생 망치기 싫으시면 젊은 여자건들지 마세요"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봉연은 오토바이에 실려 어디론가 떠나고..
피해자에서 방관자가 된 교수와 인정은 고철이 된 벤츠 안에 탄 채 마을을 떠납니다.
그리고 새로운 가해자가 된 현재는 형인 문재의 오토바이에 실려 돌아가지만...
감독은 그래도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인 문재를 곱게 돌려보내진 않습니다.(영화 보면 나옴)

죽거나 떠난 것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게 되어버린 영화' 구타유발자들'.

과연 '없었던 걸로 치자', '잊어라', '자자, 어서 먹어' 하며 쥐어주는 삽겹살과 소주 한잔, 그리고 담배 한 개피, 음료수 하나 정도로 이렇게 새롭게 시작되는, 역겨운 '폭력의 역사'가 하루아침에 없던 일로 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이 영화를 본 후 필자는 스스로 과거에 당했던 부당한 폭력의 기억대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대로 행하고 있지는 않은 건지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생각의 답은 우리 모두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대로 겠지만, 우리의 몸에 언젠가 맞은 적이 있는 그 부위는 다르게 느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영화' 구타유발자들'에서는 폭력이 대물림으로 끝나지 않고, 죄 지은 만큼 다시 돌려받는 '순환'이라고 주장합니다.

'인생 망치기 싫으면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원초적인 의문을 갖게 하는 멋지게(?) 역겨운 영화' 구타유발자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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