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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혼자놀기 2008. 3. 2.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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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태 본 영화들 중 가장 빨리 소감을 쓰는 것 같네요.

    저는 '알수록 많이 보인다'는 논리를 영화감상에 갖다붙이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화 보러가기전에 뭘 찾아보고 알고가서, 자신이 알고있는 지식에 영화의 장면들을 맞춰가며 보는건 참 재미없을것 같아서요.
    (매트릭스의 경우는 좀 예외였지만...)

    그래서 영화를 어렵게 보는건 될 수 있으면 피하고자 합니다. 저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볼 때도 거기서 철학적인 메시지를 읽어내려 애쓰지 않습니다.(Lain 등에서 하도 데어서.. 못하는 건 하지말자 주의!!!)

    다만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최대한 이해하려 애쓰며 보는 편인데, 평론가 수준까진 아니지만 이정도만 해도 상당히 많은 영화를 재미있게 볼수 있는것 같습니다. 영화는 한번에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렇게 하면 영화의 어디 구석에 깔려있던, 여태까지 몰랐던 이야기를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거든요.

    0. 부러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는 등장인물들간의 관계와 대사에 영화 전체의 주제가 철저하게 반영되어 있는 영화입니다.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에서 얼핏 '뜬금없다'는 인상을 받을수 있는 장면들이 있지만, 그런 장면들엔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보여주는 행동들이 항상 강조되어 있습니다.

    스토리의 대부분은 돈을 가지고 도망치는 자와 그의 뒤를 쫓는자의 대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도 한때 그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의 결말만을 기대하며 보는 경향이 있는것 같은데, 만약에 그렇게 보게되면 이 영화는 정말 배경음악 하나 나오지 않는 살떨리는 총격전밖에 볼수 없게 됩니다.

    사실 이게 나쁜 감상법은 아닙니다. 저도 어쨋거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건 줄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결말에 따라 소감도 달라지니까요.(이왕이면 해피엔딩!) 남에게 다른 감상법을 강요하는것도 역시 몹쓸짓이고, 결국은 영화를 이해하는 방법들 중 무엇이 주류가 되는지를 이야기 해야할거 같은데.. 솔직히 선을 그어놓고 보면 이 영화는 '대부분의 관객이 가지고 있는 잣대'로는 길이가 잘 재어지지 않는 영화에 속합니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느낀건 '부러움' 이었습니다. 이렇게 받아들여지기 힘들지도 모르는 영화에 선뜻 제작환경을 제공하고, 제작을 시도하여 상영하고, 상까지 주는 그들(?)이 정말 부럽기만 합니다. 자칫하면 몰이해로 인한 입소문을 타고 망해버렸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지요..

    1. 욕망을 따라서 움직이는 사람들

    주인공인 모스는 인간적인 면도 약간은 가지고 있고, 평범한 아내와 함께 낡은 트레일러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무뚝뚝한 청년입니다. 월남에도 다녀왔고, 우직하고 거친 행동과 건장한 신체, 그리고 항상 자신감에 가득찬 듯한 말투를 사용하며 승부욕이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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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세상을 위해 할건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회로부터 강요된 여러가지 의무들로부터 어느정도 자유롭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목표를 발견하면 자신은 그것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 욕망으로 인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그가 새로 발견한 목표는 '돈' 입니다. 거액이 든 돈가방을 발견한 순간 그것을 당연히 자기것인양 집으로 들고옵니다.

    영화의 첫장면에는 모스가 사냥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총으로 표적이 되는 동물의 조준을 마친채 확신에 찬 모습으로 방아쇠를 당기지만 맞히지 못합니다. 이것이 영화 후반부의 내용을 암시하기 위해 넣은 장면인지는 알수없지만, 그는 사냥터 근처에서 돈가방을 발견하면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어떤 절대적인 원칙'과의 게임에 뛰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원칙'에 해당되는 인물 -- 모스가 가져간 돈가방을 찾기 위해 마을에 나타난 살인마 안톤, 그는 영화의 이야기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인물입니다. 안톤은 모스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죽이다가도, 가게에서 물건을 산 후 주인에게 목숨을 걸고 동전의 한 면을 선택하게 한 다음, 동전을 던져서 살려주거나, 다리를 건너면서 다리 난간(?)에 앉아있는 새를 총으로 쏘는 등 기이한 행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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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핏 싸이코와도 같은 이 행동들은 그가 사실은 어떤 원칙에 의해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칼슨을 쏴 죽이고 발에 피를 묻히지 않기 위해 다리를 침대에 걸치는 장면에서 그가 단순한 싸이코가 아니라 원칙을 가진 인물임이 확실해 지는데, 필자가 보기에 그 원칙이란 모스와의 대립구도를 통해 느낀대로 말하자면 '우연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는 그 자신을 어떤 불확실한 형태의 '우연' 이라고 생각하며, 욕망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좌절감을 안겨 줍니다.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면서 창밖에 앉아있는 새를 쏘는 것은 동전의 한면을 고른 다음 던지게 하는 것처럼, 어떤 우연성과 '맞거나 날아가거나' 둘 중에 하나에 아무렇게나 의지하는 이분적인 선택에 그가 기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원칙을 확실히 행하기 위해 불법 개조한 무기를 사용하여 목표를 확실히 제거하거나, 상대에게 동전의 한면을 선택할 것을 강요하며, 사고를 당해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가게 주인이 '어디서 왔냐?'고 안톤에게 묻자 안톤이 가게주인을 돈때문에 결혼해서 그 혜택을 본 인물로 단정하여 동전을 던지게 하는 장면에서는 그가 욕망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에겐 재수없는 '우연'으로서, 선택을 강요하는 존재임을 나타냅니다. 안톤에게 사람이란 살거나 죽거나 둘 중에 하나뿐이며, 그는 욕망을 따르는자에겐 자신과의 게임에서 이기거나 죽거나 두개의 선택지밖에 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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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인 모스의 모습은 여러가지 부분에서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세상이 하라는대로 다 했는데 삶의 수준은 늘 좀 아래 어디엔가 머물러 있고,
    그래서 어쩌다 기회가 오면, 그 기회의 혜택은 자신이 당연히 누려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걸 놓치게 되면 운이 없어서, 우연히 일어난 어떤 일 때문에 망쳤다고 여기며 억울해 합니다.
    욕망을 따라 움직이면서, 때로는 인정을 베풀기도 하지만 어떤 정의감을 가지고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이런 모스에게 안톤은 넘을 수 없는 어떤 원칙의 벽입니다. 안톤과의 대결에서 죽거나, 아니면 '안톤' 이라는 이름의 원칙을 깨거나, 두가지 길밖에 없습니다.

    2. 손쓸 수 없는 방관자들

    희한하게도 감독은 모스와 안톤의 대결 과정에서 둘의 닮은꼴을 보여줍니다.

    둘다 총격전이나 사고로 인해 다친 상처를 치료하는 모습이 그것인데, 병원에도 가지 않고 약품을 구해서 방안에서 주사제와 붕대를 사용해 치료하거나,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면서 옷이나 필요한 물건을 얻은 뒤 못본척 해달라며 도움을 뿌리치기도 합니다.

    그들의 이런 닮은 행동들은 그들을 만난 젊은이나 아이들에게 어느정도 영향을 주는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부상당한 모스나 안톤을 만난 그들은 들고있는 맥주와 겉옷을 피묻은 돈과 바꾸면서 오히려 흥정을 하거나, 받은 돈을 가지고 다투기도 합니다. 욕망을 따르고, 그것으로 얻을수 있는 댓가를 철저히 믿음으로 해서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은 세대를 이어가며 계속됩니다.

    이런 모습들은 한 국가의 사회,경제나 통치체계를 위한 하드웨어를 구축하기에 여념이 없던 구세대, 즉 노인들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들입니다. '요즘 젊은것들은 사람을 죽이는데 별 이유가 없어' 라는 대사가 몇번 나오는데, 늙은 보안관 벨이 보기에도 이런 젊은이들과 아이들의 모습은 부조리하기 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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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들은 인생의 끝에 도달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끝에서 뒤로 돌아서서 자신의 뒤를 쫓아 다가오는 새로운 것들을 지켜보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영화는 보안관 벨과 그의 젊은 파트너와의 어색한 대화에서 계속해서 보여주려 합니다. 파트너는 살인사건의 현장에서 벨의 추리와 판단력에 계속해서 비위만을 맞추어 주는것을 벨의 상관으로서의 위치와 나이에 대한 대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도 벨이 정년을 앞둔 퇴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고, 벨과의 대화에서 이런 속마음을 여러번 들키면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모스의 허무한 죽음이 말해주듯, 영화는 그릇된 욕망과 의지만으로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많은 사람들은 욕망으로 인한 '그 무언가'을 쫓는 과정을 '성취의 한 단계'라고 착각하며 살아갈 뿐이니, 결국 삶을 대하는 그런 태도가 이룰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욕망을 쫓아 인생의 끝까지, 해가 질 때까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정점까지 갔는데, 그 모든것의 끝에는 안톤과도 같은, 흔히 '우연'이라고 생각되는 절대적인 원칙이 있을 뿐입니다. 욕망을 쫓아왔기 때문에 그 원칙은 모두에게 좌절감을 줄 뿐입니다. 노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대강이나마 아는 사람들입니다.

    개인보다는 사회와 가족을 위해 살아온 노인들에게 있어 욕망을 쫓고 그것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며 움직이는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요즘의 현실은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생각할수록 어둡기만 합니다.

    3.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영화는 마지막에 벨이 자신의 두개의 꿈 이야기를 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나타나서 '돈은 잊어버려라,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라는 말을 하는 꿈과, '춥고 눈이 쌓인 산을 보안관이 말을 타고 가는데 아버지가 자신을 지나쳐서 계속 과거를 지나쳐서 앞으로 달려가는데 담요로 둘러싸고 고개를 숙인채로 옛날 사람들이 하는 식으로 뿔속의 불로 달같은 색깔의 불빛을 만들었고 어둡고 추운 저쪽에 불을 지피고 있다' 는 이야기가 그것인데, 지금까지 살고나서야 알게된 것들을 사실은 아버지가 꿈을 통해 알려주려 했거나, 그동안 잘 알려주지 않으려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싶은듯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벨은 자신이 깨달은 것들을 정리합니다.

    인생의 진리를 전해야 할 노인들이 무언가를 깨달았을때는 이미 그것을 실천할 능력이 사라진 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욕망에 대한 믿음으로 대체하여 살아갑니다. 그리고 끝에가서야 '왜 끝이 이렇다는걸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을까' 하고 억울해 하거나, 벨처럼 아버지의 꿈 이야기를 하며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고있던 것'이라며 슬픔을 억제해 나갈 뿐입니다.

    모스와 안톤의 대립으로 인해 벌어지는 잔혹한 사건들, 이를 접하는 벨을 비롯하여 극중에 등장하는 '노인'들이 더 슬퍼보이는 이유는, 그들은 이 현실의 문제를 파악하고 있지만 그것을 바로잡을수 있는 힘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노인을 위한 나라가 있다면, 그들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의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지만, 벨은 안톤을 잡지도 못하고, 모스를 구하지도 못한채 쓸쓸히 보안관직에서 은퇴합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과 능력을 연장해주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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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후기

    사실 이 영화의 화법은 보는이를 그렇게 배려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좀 유심히 보려하면 파격적인 총격전으로 넘어가고, 장면을 충분히 받아들이기도 전에 이야기가 진행되어 버립니다. 보는 동안 이것이 가장 힘들었던거 같네요.

    하지만 '노인들의 어쩔수 없는 방관'을 통해 해석되는 현실의 갈등을 이정도까지 영화로 담아내는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총격전에서 보여준 기발한 연출들과 극도의 긴장감을 위한 장치들은 보고나서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올정도였습니다.

    끝에가서야 알 수 있기에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것들, 우리는 어떤 세계관과 신념을 가져야 바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편하게 사는 것(이라고 써놓고 게으름이라고 읽는)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살아가는 저의 머리속을 혼란스럽게 한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였습니다.

    못쓴 글 긴시간동안 읽어주셔서 캄사 캄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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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지 노인네 토미 리 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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