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경기시작전의 한가한 야구장에서 본 일이다.
덩치 큰 흑인 하나가 스포츠 기자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떨리는 소리로 지역 스포츠 신문 1면을 보여주면서 "황송하지만 이 1면의 롯데자이언츠 1승 소식이 사실인지 좀 보아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외국인노동자와 처럼 기자의 입을 쳐다본다.
기자는 흑인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신문을 툭툭 두드리며 "맞음" 하고 내어준다. 흑인은 "맞음" 하는 말에 기쁜 얼굴로 신문을 도로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넣고 "Thank you very much" 를 몇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이번엔 구단주를 찾아가 말을 건다. 품속에 손을 넣고 한참 꾸물거리다가 그 신문을 내어 놓으며 "이 한글로 된 1면기사가 정말 롯데자이언츠 1승 소식이오이까?" 하고 묻는다.
질문을 받은 구단주는 호기심 있는 눈으로 흑인을 바라보더니, "왜 이거 찢어서 응원도구 만들어주까?" 흑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no, 아뉨미다, 아니예요" "비닐봉지도 하나 갖다주까?" "no, no! 어서 도로 주십시오." 흑인은 손을 내밀었다. 구단주는 웃으면서 "맞소" 하고 신문을 던져주었다. 흑인은 얼른 집어서 신문을 가슴에 품고 황망히 구단주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신문이 구겨지지 않았나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덕아웃 어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벤치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신문을 펼쳐놓고 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열중해 있었는지 멕시칸 용병타자가 가까이 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응원도구 만들라고 줍디까?" 멕시칸 용병타자가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그 말소리에 움칠 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마시오, 찢지 않겠소" 하고 멕시칸 용병타자는 그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흑인은 멕시칸 용병타자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응원도구가 아닙니다. 자리에 깔고 앉는것도 아닙니다. 한글로 씌여진 내용이 궁금했습니다. 내가 이끄는 팀의 경기내용이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타격으로 출루해도 득점하기 쉽지 않습니다. 나는 타자들을 한명 한명 바꾸면서 선수들의 상태를 살폈습니다. 이렇게 하여 출루율도 높이고 시범경기 우승 징크스를 잊으려 했습니다. 이러기를 6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시즌 첫승을 올렸습니다. 이 첫승을 올리느라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멕시칸 용병타자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첫승을 올린단 말이오? 그래서 뭘 하려오?" 하고 물었다. 흑인은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시즌 첫승을 꼭 올리고 싶었습니다.."